한초시대 유방 선조와 관련된 이야기들..
何如 ! 와 如何 ?
춘추전국시대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고 대륙이 혼란한 시기, 항우와 유방은 중국 천하를 놓고 8년간 대결한 영웅이였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상반된 인물이었는데 항우는 명문가 출신으로 역발산기개세, 기세나 실력면에서 뛰어난 인물인데 반하여 유방은 시골 건달 출신으로 전쟁에서는 다소 서툰 지략가에 속한다.
항우가 잘 쓰는 말은 어떻냐(何如)!였다
싸워서 이길때 마다 부하들을 향해 이 말을 던지며, 당대 최고의 전사자이자 지도자임을 자부했다.
이와 달리 유방은 늘 부하들에게 어떻게 하지(如何)?라고 물어봤다.
닥친 어려움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항우는 동료나 부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충성스런 부하장수들과 신하들은 점차 말문을 닫았다.
반면 항상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유방은 부하 장수와 신하들에게 권한을 나누어주고 그들을 잘 활용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바로 유방이였다.
동료나 부하들의 의견을 존중했던 그를 많은 이들이 믿고 따랐고, 수많은 부하 장수들의 도움으로 한 나라의 초대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일방적인 통보나 지시 보다는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이 소통의 시작임을 일깨워 줌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판소리에서도 일고수일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는 말이 있다.
북을 치는 사람이 첫째이고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 그 다음이라는 뜻으로 아무리 명창이라 할지라도 고수가 잘해야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얼핏 판소리의 주인공은 명창만으로 충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소리를 북돋아주는 고수가 있어야 완전하고 멋진 공연이 이루어 질수 있으니, 진정한 명창은 뛰어난 고수를 알아보고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초한시대에 만들어진 말, 말, 말 ... 고사성어들
[일패도지(一敗塗地)]
한번 패하여 그 뇌수를 땅에 칠한다. 곧 재기의 여지없이 참패함을 가리킴.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패현에 살던 유방(劉邦)도 그곳 현령(패공)을 처단하고 반란에 동참했다. 패현의 관리들과 부로(父老)들이 유방을 패현의 현령으로 추대하려 하자 유방이 사양하며 말했다.
" 이 어려운 때에 무능한 장수를 지도자로 삼으면 재기의 여지없이 참패할 것 이오. 신중히 결정해야 하오."
그러나 현의 관리들인 소하(蕭何), 조참(曹參) 등을 비롯해서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유방이 추대되어 패공(沛公)이 되었다.
[선즉제인(先則制人)]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할 수 있다는 뜻.
한편 초나라 명장이던 항연(項燕)의 아들 항량(項梁)은 조카인 항우(項羽)와 함께 강동 회계군 오중(吳中)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오중의 명사였다. 회계군수인 은통(殷通)은 진승과 오광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봉기하려고 항량에게 이렇게 말했다.
"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 징조가 보이는데 먼저 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을 당한다고 하니 나도 군사를 일으켜 그대와 환초(桓楚)를 대장으로 삼으려 하오."
항량은 환초를 데리려 간다고 나가더니 항우를 불러 검을 준비시킨 뒤에 갑자기 은통의 집무실에 들어와 그를 한 칼에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항우와 함께 군사를 모집해 진나라 타도의 반기를 들으니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유방이 항량의 휘하가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오합지중(烏合之衆)] 어중이떠중이를 모아놓아 까마귀처럼 시끄럽기만 한 무력한 무리.
유방이 전략 요충지인 진류(陳留)를 공략하려고 고양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역이기는 유방이 유생을 싫어한다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가 찾아가도 본체만체 하녀에게 발을 씻기도 있는 유방을 보고 그가 말했다.
" 족하(足下--윗 사람에 대한 존칭)는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치려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과 연합하여 진나라를 치려하십니까?"
"뭐야? 이 되지못한 유생 놈아. 천하 만민이 진나라의 폭정에 괴로워하기에 제후들과 연합하여 진나라를 치려는 것이 아닌가? 어찌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친다고 하는가?"
"그러시다 면서 어찌 마을의 장자를 만나 그처럼 거만 무례한 태도를 취하십니까?"
유방이 얼른 역이기를 상좌에 앉게 하고 사과하자 역이기는 천하의 정세와 전국시대에 천하가 합종연횡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유방이 좋은 계책이 있으면 들려달라고 청했다. 역이기가 말했다.
"1만 명도 안되는 오합지졸 을 거느리고 진나라를 친다는 것은 호랑이 아가리에 주먹을 들이미는 것과 같이 무모합니다."
역이기가 진류 현령을 설득하기로 해서 유방이 그 계책을 따랐다. 그래서 유방은 진류를 어렵지 않게 손에 넣었다. 유방은 역이기를 광야군(廣野君) 에 봉했다.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역이기와 장량(張良) 등 계책에 뛰어난 사람들을 많이 거느린 유방은 항우보다 한 발 먼저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입성하여 진나라 왕인 자영(子영)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유방이 진나라 궁궐에 들어가보니 휘황찬란한 보물과 휘장, 개와 말, 수많은 궁녀들이 있어 몹시 탐이 났다. 이를 보고 장량이 말했다.
"진나라가 무도했기 때문에 패공(유방을 가리킴)께서 여기까지 오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검소한 생활을 하시면서 잔적을 소탕해야 하는데 궁궐에 들어오자마자 사치와 편안함을 누리려 하신다면 되겠습니까?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다 고 합니다. 여기서 나가시지요."
유방은 할 수 없이 궁실을 봉하고 물러나왔다.
[법삼장(法三章)] 3조목에 불과한 아주 간소한 법률.
궁실을 물러나와 자기의 진이 있는 패상(覇上)으로 되돌아온 유방은 각 고을의 부로들과 유지들을 불러 모은 다음 이렇게 선언했다.
"여러분들은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에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나는 맨 처음으로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제수하기로 한대로 관중왕이 될 것이니 여러분들과 약조하여 영을 내리겠습니다."
하고는 모든 번잡한 법령을 폐지하고 단 3가지 법령만을 선포했다. 이 간략한 법 3장 을 들은 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금의야행(錦衣夜行)]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 곧 빛나는 성공을 남에게 드러낼 수 없음을 가리킨다.
홍문의 회합 후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함양에 도착해 유방이 봉인한 진나라 궁궐에 불을 지르고 갖가지 보화와 궁녀들을 뺴내어 귀향하려 했다. 이를 보고 한생(韓生)이 말했다.
"관중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막혀있고 땅이 비옥하여 도읍으로 삼아 패업을 달성할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궁실이 이미 불타버렸을 뿐만 아니라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이기지 못한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부귀하고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은 일 이다.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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