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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부방

「夜凉」서늘한 밤의 노래 -다산-

서늘한 밤의 노래

천안함, 세종시, 4대강, 지방선거, 청문회정국 등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긴박한 시국 탓에,

삶을 성찰하고 세월의 흐름을 감지하는 일에는 등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무더운 열대야가 계속되기도 했고,

비의 양이야 적으면서도 날마다 비가 내리는 이상한 날씨가 연이어졌습니다.

그f렇게 7∼8월의 여름은 가고

가을인 9월이 성큼 다가와이제 더위가 가고 신량(新凉)이 교허(郊墟)로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비도 없는 건태풍이 강타하여 세상은 또 걱정되는 일만 많아졌습니다.

그렇다해도 시절은 속일 수 없다고 밤이면 제법 청량한 기운이 돌면서

여름 더위에 고생하던 우리를 조금은 편하게 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스모스도 피어나고 국화도 머물면서

고추잠자리와 해바라기꽃도 제철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10월을 넘기려는 깊은 가을

조금 숨을 길게 쉬면서, 다산의 가을시 한편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밤이 되니 서늘하네’(夜凉)라는 세월을 읊은 노래입니다.

「夜凉」

금년에는 지루한 무더위 길기만 하더니 今歲支離?暑長
달밤의 서쪽 문에서 처음으로 서늘한 바람 맞았네 西門月夕始迎涼
매미 소리 누가 말린 듯 갑자기 뚝 그치고 蟬聲猝遇銜枚氏
온갖 풀벌레 응원 받은 듯 마구마구 울어 되네 蟲語如循協律郞
눈 비비고 마을앞길 바라보니 훤히 트였는데 前路拭眸淸世界
회고해보니 괴롭던 더위일랑 생각이 안 나네 苦緣回首冷思量
가을의 꽃에 가을열매 시절은 좋기만 한데 碧花紅穗時光好
도처에서 날 부르며 주책없는 늙은이 잘도 봐주네 到處携吾恕老狂

정확한 연대는 명기되어 있지 않아 지은 때가 언제임을 알 수 없지만,

대강 앞뒤를 살펴보면 임진(壬辰:1832)년 가을인 추석 무렵의 시로

다산이 70세이던 노령의 때로 보여집니다.

매미가 함매씨(銜枚氏)를 만났다거나,

가을 곤충들이 협률랑(協律郞)을 따른다라는 표현은

모두 고사(故事)를 인용하였는데 번역은 그냥 풀어서 했습니다.

함매씨는 주(周)나라 때의 벼슬로 소리 내지 못하게 규율하는 관리이고,

협률랑은 소리가 제대로 나도록 조율해주는 주나라의 관리였으니,

매미소리를 그치게 하고,

벌레들이 제대로 소리를 내게 도와주는 사람으로 쉽게 풀어서 해석했습니다.

녹음이 칙칙 우거진 늦여름에 제 목소리를 내는 매미, 찬바람이 나면 소리가 약해지고,

여름내 매미에 치어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던 풀벌레들이 서늘한 바람을 맞아 제 목소리를 낸다는

다산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시입니다. 서늘한 밤공기에 여름의 더위 고통도 모두 잊는다는 표현도 좋습니다.

세상이 제발 조용해져 대문호 다산의 시를 감상하는 때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시는 심성의 도야에 큰 도움이 된다고 다산이 말했습니다.

올해는 지루하게도 무더위가 오래 갔는데 / 今歲支離?暑長
달밤에 서쪽 문으로 서늘함을 처음 맞나니 / 西門月夕始迎涼
매미 소리는 갑자기 함매씨를 만났고 / 蟬聲猝遇銜枚氏
벌레 소리는 마치 협률랑을 따른 듯하네 / 蟲語如循協律郞
눈 비비고 바라보니 앞길은 맑은 세계요 / 前路拭眸淸世界
회고하니 괴로운 인연은 냉담키만 하여라 / 苦緣回首冷思量
푸른 꽃 붉은 줄기 시절은 좋기도 한데 / 碧花紅穗時光好
간 곳마다 날 끌어라 노광을 동정해 주네 / 到處携吾恕老狂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