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직녀(牽牛織女)
견우직녀(牽牛織女)는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문헌상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며 중국에서는 사대 민간전설로 여기기도 한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기록한 설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중국 양(梁)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우랑직녀(牛郎織女)의 이야기로 전해지는데 우리나라의견우직녀(牽牛織女) 전설과 일본의 타나바타(七夕) 등의 풍습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 내용은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여름의 별자리인 견우, 직녀 (the Altair and the Vega)와 관련이 있다.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
우리나라에는 대안 덕흥리(大安德興里 :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이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이 고분벽화는 408년(광개토대왕 18년)에 축조되었는데 벽화를 보면 은하수가 완만하게 표현되어 있고 견우는 황소를 끌고, 직녀의 뒤에는 검은 개가 따르고 있다. 황색포를 입은 견우는 한 손에 고삐를 쥐고 있고, 직녀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음력 7월 7일에 七月七夕(7월7일 저녁)을 기념하고 있는데, 7월 7일은 바쁜 농사일이 어느 정도 끝나고 무더위와 장마도 어느 정도 끝날 때이기 때문에 잠시 몸과 마음을 쉬고 주변을 정리하는 날로 삼았다.
이날 날씨가 좋으면 여름 내내 입었던 옷들을 빨아서 햇볕에 널어 말렸으며, 습기가 찬 책들을 햇볕에 말리고 바람을 쏘였다. 이날 저녁에 처녀들은 바느질 솜씨가 늘길 빌었고, 소년들은 직녀성과 견우성을 제목으로 해서 작시를 했다. 또 부녀자들은 우물을 깨끗이 치우고 떡을 해서 칠석제를 지내 집안과 자녀를 위해 빌었다.
또한 칠석날은 햇것을 맛보는 날이었다. 새로 난 고추와 가지 등 나물을 무쳐 먹었는데, 호박이 잘 열고 오이와 참외가 많이 나올 때이므로 호박부침을 해서 먹었다.
칠월 칠석날 저녁에,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 두 별에게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하여 달라고 비는 일을 걸교(乞巧;바늘귀에 실을 꿰는 삐어난 재주)라고 하며, 걸교(乞巧)가 든 달인 음력 7월을 교월(巧月)이라고 한다.
철월 칠석 전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타로 갈 수레 준비를 하느라고 먼지 앉은 수레를 씻는데 그 물이 인간 세상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이 비를 '수레 씻는 비' 즉 세차우(洗車雨)라고 하며, 철석날에 내리는 비를 칠석우(七夕雨)라고 하는데, 칠석날 저녁에 내리는 비는 견우가 직녀가 서로 상봉하여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요, 칠석날 이튿날 새벽에 내리는 비는 긴 이별을 슬퍼하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해서 '눈물 흘리는 비' 즉 쇄로우(灑淚雨)라고도 한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 견우별은 독수리별자리의 알타이어(Altair)별이고, 직녀별은 거문고별자리의 베가(Vega)별을 가르킨다. 이 두 별은 은하수의 동쪽과 서쪽의 둑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을 초저녁에는 서쪽 하늘에 보이고, 겨울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떠 있고, 봄 초저녁에는 동쪽 하늘에 나타나며 칠석 때면 천장 부근에서 보게 되므로 마치 1년에 한 번씩 마주치는 것처럼 관찰된다고 한다.
견우(牽牛) 직녀(織女) 이야기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소를 모는 남자 견우(牽牛)와 비단을 짜는 여자 직녀(織女)의 사랑 이야기와 관련된 설화이다. 육당 최남선 전집 5에 소개되고 있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대강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허허 벽공(碧空)으로 허옇게 흘러가는 은하수 동녘에 한 가인(佳人)이 사니, 천제(옥황상제; 玉皇上帝)의 따님으로 이름을 직녀(織女)라 하였다. 그 이름과 같이 직녀는 아침저녁 없이 베틀을 차고앉아서 천상에 소용되는 온갖 비단을 짜 내는 것이 소임이어서, 머리 빗고 얼굴 다듬을 겨를조차 거의 없었다.
천제께서 하도 어여삐 여기셔서, "젊으나 젊은 애가 일에 얽매여서 지낼 뿐이요, 낙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남편이나 얻어서 서로 위로를 하게 하리라."하시고, 은하수 서녘에 사는 견우(牽牛)라는 신랑에게 보내서 배필을 삼으셨다.
직녀의 생활이 갑자기 명랑해지며 신접살이 재미에 꼼빡 반하여 비단 짜는 소임을 차차 게을리 하게 되니, 천자께서 "이래서는 선녀들의 의차(衣次)가 부족하게 되겠다." 하시고 두 사람의 곳으로 오셔서 "직녀야, 너는 염치도 없지 아니하냐. 내외의 사랑살이도 좋으려니오, 맡은 직분이 더 중한 줄을 모르냐. 얼른 냉큼 은하수 동녘으로 돌아가서 비단 짜는 소임을 힘쓰고, 이제부터 일 년에 한번만 견우와 서로 만나봄을 허락하는 것이니 그리 알아라"하고 엄중한 분부를 내리셨다.
직녀는 천제의 명을 거스리지 못하여, 생나무 쪼개는 듯한 작별을 하고 은하수를 건너 동켝의 옛 처소로 돌아가서 전과 같이 베틀과 씨름을 하면서 일 년에 한 번 허락된 날을 고대고대하였다.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는 정일은 칠월 칠일(七月七日)이니, 일년내 이 날을 기다리다가도 공교히 이 날에 비가 오게 되면 은하수의 물 부피가 늘어서 건너가지를 못하고 동서 양안에서 물을 격하여 무주보고 서려워할 뿐이었다.
이 딱하고 애처로운 사정을 보다 못하여, 오작(烏鵲;까막까치)이 은하수에 다리인 오작교(烏鵲橋)를 놓아서 직녀를 동안으로부터 서안으로 건네어 주는 일이 있다.
[견우 직녀 이야기에서 변형된 이야기도 있는데, 우랑 이야기과 동영 이야기이다.]
우랑(牛郞) 이야기
우랑(牛郞)이라는 청년이 계모 밑에서 소를 치며 고생스럽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홉 명의 선녀가 세상에 내려와 호수에서 물장난을 치고 있는데 소가 그것을 알고 우랑에게 기슭에 벗어둔 옷 한 벌을 훔쳐 갖고 오게 하였다.
그래서 선녀 한 명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녀가 바로 직녀였다. 그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천제가 이 사실을 알고 직녀를 하늘로 불러 올렸다. 우랑이 아이들을 데리고 뒤쫓아 올라 갔을 때 서왕모가 비녀를 공중에 한번 긋자 은하수가 생겨나서 우랑과 직녀는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서왕모는 그들에게 이후로 일 년에 한 차례, 칠일 동안만 만나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그들은 매년 칠월 칠일에 한번 만나는 것으로 잘못 들어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동영(董永) 이야기
한 나라 때 유향(劉向)이 쓴 ‘효자전(孝子傳)’에 실린 동영(董永)이야기 역시 견우직녀 신화의 변형이다. 동영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를 따라 농사짓고 살았는데 그 아버지마저 돌아가셨으나 장례를 치를 돈조차 없었다.
그래서 동영은 부잣집에 몸을 팔아 그 돈으로 우선 삼년상을 치르고 약속대로 종살이를 하러 갔다. 길을 가는 도중에 그는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동영의 아내가 되기를 자청하였다. 둘은 부부가 되어 부잣집엘 찾아 갔다.
부자는 몸값 대신 옷감 백 필을 짜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랬더니 동영의 처가 열흘 만에 그 일을 다 끝내고 자신이 천상의 직녀임을 밝혔다.
동영의 효성이 지극하여 천제가 그녀로 하여금 그를 도와 빚을 갚게 해준 것이라고 말한 직녀는 공중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이 이야기에서 견우직녀 신화는 한 나라 때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효 사상에 의해 적지 않게 변형되었다. 견우가 졸지에 효자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한 나라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모범적인 인물형이었다.
견우직녀 작곡 최종혁 / 작사 김경란 / 노래 KBS어린이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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