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 만동묘(萬東廟)에서 능촌리 취묵당 (醉墨堂)까지
산길로 접어들며 숨을 크게 고른다
꼿꼿한 노송들이 어깨 겯고 늘어서서
서늘한 시선들 모두 내게로만 집중된 길
합장하듯 손 모으고 한 발 한 발 내 딛는다
깨끗함을 만난다는 것은 내 남루를 내보이는 것
허리 춤을 단단히 고쳐매고
바지 춤 걷어 올리고
화양동 만동묘를 돌아 취묵당을 찾아간다
그럴싸하게 가려도
학문하는 목적이 신분 상승 수단인 것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건만
벼슬길 열어 주어도 외면할 수 있음에랴
은빛 낙조가 쉬어 간다는 취묵당에 들면
끊임없이 넘실대는 마음속 파도 잠재울까
아,
그 어느날 갑자기
죽도록 내가 싫어지는 날,
세상사 다 귀찮아 지는 그런 날에,
취묵당 바람 그리워 찾아오게 되리라...
용호음(龍湖吟) / 백곡 김득신
*김득신이 지금의 서울 용산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4연시이다
고목에는 차가운 구름이 서리고 / 古木寒雲裏(고목한운리)
가을 산에 소나기 흩뿌리네 / 秋山白雨邊(추산백우변)
해 저무는 강물에 풍랑이 이니 / 暮江風浪起(모강풍랑기)
어부는 서둘러 뱃머리를 돌리네 / 漁子急回船(어자급회선)
취묵당(醉默堂)
깨어있어도 입을 다물고
취해도 입을 다물어야 재앙을 모면할 수 있으니
침묵을 금으로 여기는 삶을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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