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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하얀집/하얀집周邊

충북여행 -- 음성 큰바위얼굴조각공원, 상수허브랜드, 청남대, 법주사

코스 동선 : 음성큰바위얼굴조각공원 --> 상수허브랜드 -->속리산-->
법주사 산책및 비림박물관(또는 속리산등산)--> 초정약수 --> 운보의 집


*답사 사진및 설명

음성 큰바위얼굴조각공원 입구.

원래 주유소자리였던 것을 입구 주차장으로 바꾼 것같은데뭔가 제대로 가꾸어져 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도 보이고,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보인다.


기독교와 관련된 12사제와 예수님의 모습도 조각해 놨고


누워계신 부처님(와불)의 모습도 보인다.


넓은 곳이라 그런지 쉼터도 마련해 놓고 있다.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고 잠시 쉬어갈 수도 있는 공간이라 발 한 번 뻗고 다시 관람을 시작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주목으로 만든새와 의자, 그리고 인물상들이 있는 실내 전시관


역대 우리나라의 대통령들의 흉상.

잘 꾸며진 곳이 있는가 하면 아직 준비중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다. 옛 인물들과 고전의 인물들 그리고 최근의 인물들까지 세심한 신경을 쓴 부분들이 많았으나 입구의 기념품판매나 조각공원외에 즐길거리가 많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넓은 조각공원을 함께한 회원들과 둘러보고 나오니 이미 시간은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만꽃밥을 먹으러상수허브랜드를 향해 출발을 했다.


미트꽃밥

허브 함박스테이크

함박스테이크의 샐러드

미트꽃밥

꽃밥속의 꽃을 동치미 위에 띄워놓은 모습. 시각적으로 미각을 돋구는 효과가 만점이다^^

허브쉼터

각종 허브 체험생사 안내

허브비누 체험행사장



해학적인 모습의 고추공룡바위^^앞은 남근을 닮았고 뒤는 알을 낳는 공룡을 닮아서 고추공룡바위며 아들을 원하면 앞부분을 딸을 원하면 뒷부분을 만지면 된다고 하는데 요즘은 뒷부분을 만지는 부부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허브 생카펫

허브용궁

허브용궁에는 철갑상어와 우렁이 그리고 각종 민물고기의 치어들이 살고 있다.


허브육묘장옆의 폭포가 시원스럽다^^



허브랜드 입구의 매표소앞에 차려진 허브�. 메인허브�은 취지의 설명에도 불구 매장 판매원이 촬영을 허용하지 않아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소형차주차장이 만원이라 대형차 주차장으로 차를 돌려야 했는데 이정표가 제대로 되었이지 않아 지나쳤다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맛보아야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허브향에 취해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상수허브랜드를 관람하고 나오니 시간은 이미 세시를 넘어 섰다. 나그네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바로 근처에 있을것만 같았던 청남대는 20여분을 달려야 했고 매표소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려 청남대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합치니 어느 덧 시간은 다섯시가 다 되어간다.

청남대 대통령 별장 본관

대통령 별장 본관 전경

본관은 지상 2층, 지하1층 총 816평 규모로 외부 노출 차단과 주변 환경에 잘 어울리게 설계되었으며 원형화단의 5그루 노송은 적송 또는 홍송이라 불리우는 순수 한국산 소나무로 수령이 130여 년이다.


또한 본관 내부 1층은 388평, 2층은 247평, 지하 181평으로 1층은 회의실, 손님 접견실, 식당, 손님침실, 2층은 대통령 전용 공간인 침실, 서재, 거실, 식당과 가족들을 위한 침실, 거실과 설 및 추석에 하례를 받던 한실이 있으며, 지하는 기계실 및 물품창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본관 뒷편에 있는 모과나무


메타세콰이어숲길


오각정(오각형 정자)은 1983년 본관 신축시 13평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20년동안 대통령내외분과 가족 분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많은 야생화와 숲이 어우러져 삼림욕에 적합하고 낮에는 호수와 산을, 밤에는 달구경을 할 수 있는 청남대 제1경이다.

오각정에서 바라 본 대청호

양어장.

연병장에서는 정크아트 환경조각공원을 만들어관람의 장을 조성하였다.

관리동에서는 청남대를 배경으로 한 사계의 모습을사진이나 그림으로 전시회 두었으며, 우리나라 역대대통령들의 지나간 사진들을 전시해 두었다.


대통령 경호실 338경비대 장병들이 쓰던 취사도구들


청남대가 노무현대통령의 선거 공약으로 2003년 4월 18일 충청북도로 이양되고 일반일들에게 개방되면서 이 곳을 지키던 대통령 경호실 338경비대 소속의 장병들이 쓴 마지막 이야기들

역대 대통령들을 사진으로 전시한 대통령관.


너무 촉박한 시간때문에 초가정쪽으로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나오는 버스로 돌아와야하는 아쉬움 남겼다. 코스일정에는 두 시간 관광으로 되어있지만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시간과앞에서 빼앗긴 시간으로수박겉�기 같은 아쉬운 답사가 되었다.


날의 일정을 마직막으로마치고 나니 예상했던 시간보다 너무 많이 지체되어 속리산으로 가서 먹기로 한 저녁약속을 취소하고 대청호 부근의 유명한 송어회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빠알간 살의 송어회가 지친 나그네들의 식사겸 술 안주로 피로를 풀어준다.


구병마을에서 운영중인팬션은 일주일 전부터 예약이 끝나 있어서 구병마을사무장님이 마을에 있는 민박집을 소개해 주셨다.방 하나에 거실 하나인 민박집이시설도 깔끔하고 한가족이 쉬어가기에는안성맞춤인 숙소였다. 뒤로는 구병산이 병풍처럼둘러쳐저있다.


민박집 주인아저씨와...

구병산. 속리산국립공원의 남쪽 국도변에 자리잡고있는 높이 876m의산이다.주능선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지면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 아홉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주위에 있는 속리산에 가려서 일반인에게 잘 알려있지 않아 산 전체가 조용하고 깨끗하다. 산 자체로 볼 때는 크게 내세울 것은 없으나 암산으로 이루어져 산행이 쉬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험하다.
구병산은 우거진 숲으로 물도 맑아 여름산행지로 적격이나 가을의 경치도 볼 만하다. 붉게 물든 단풍뿐 아니라 적암리의 감나무 밭이 잘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다.


속리사 입구에 있는 인심좋은 주인아저씨의 올갱이 해장국집. 시원하게 쏟아진 소나기 때문인지 더욱 맑기만 한 아침에 시원한 올갱이국으로 속을 달랬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가 우리의 아침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 best 친절 식당^^

아침나절에 숙소를 나서기 전 엄청난 폭우에 시간은 한 시간가량이 지체되었다.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9시. 식사를 마치고 나니 9시 40분이다. 가을 아침의 맑은 공기를맡으며속리산을 향해 출발한다.


속리산입구. 가을 낙엽이 진 산책로가 입구 좌측으로 만들어져있어서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준다.

법주사 입구

법주사 입구의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시대적용 기타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법주사 입구 안내도 앞에서^^

일주문을 지나 수정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법주사 가람에 들어서게 되는데 그 첫 입구가 금강문(金剛門)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좌우에는 돌담이 늘어서 회랑을 형성하고 있다. 금강문은 인왕상을 봉안하기 때문에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부른다. 대체로 문 양쪽에는 금강저(金剛杵)나 칼과 창을 손에 들고 있는 금강역사가 모셔진다. 그래서 왼쪽에는 밀적금강(蜜跡金剛),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을 모시는데, 혹 입을 벌리고 있는 상을 아금강역사(阿金剛力士)라 부르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우금강역사(金剛力士)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 금강문 안에는 1974년에 조성한 금강역사 2위와 사자를 탄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을 함께 봉안하였다.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은 능인전 옆의 추래암(墜來岩)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으로서 현재 보물 제2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의상(倚像)이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의자 대신에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애불로서 이러한 예는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불이 유일한 작품인데 그 양식상의 특징과 연관지어 미륵불로 추정하고 있다.

금강문을 통해 깨뜨릴 수 없는 불법의 세계를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을 만난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앞면 3칸에는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도록 하였고 양쪽의 끝 칸에는 문이 아니라 작은 판창(板窓)을 달았다. 대개 사찰의 금강문은 앞면 3칸 정도의 규모인데, 이처럼 5칸을 마련하고 양옆에 판창을 댄 법주사의 경우는 매우 특이한 경우로, 국내의 천왕문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현재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보전에서 팔상전에 이르는 앞마당에는 신라시대의 걸작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있다. 국보 제5호로, 높이 3.3m에 이르는 팔각석등이다. 신라시대의 석등은 대개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대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상대석을 떠받치는 독특한 양식이다.팔각의 지대석은 아래 위에 가는 테를 돌리고 우주를 나타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옛 기록과 기단석(基壇石의) 양식으로 보아 지금의 건물은 고려 중기에 처음 세운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때 창건했을 무렵에는 대웅보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는 미륵장륙상을 모신 용화보전이 있어 미륵신앙 도량인 법주사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1624년(인조 2)에 중건하였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하였지만, 조선 중기의 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었다.

범종각은 팔상전의 동쪽 정면에 있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6년 종무소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지었다. 안에는 범종(梵鍾)·운판(雲板)·법고(法鼓)·목어(木魚) 등이 있다. 이 네 가지의 법구(法具)가 불당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를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네 가지 법구들은 각각의 용도와 의미를 지닌다. 먼저 범종은 지옥에서 한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운판은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모두 이 소리를 들음으로써 영원한 해탈심을 느끼게 한다. 또한 법고는 땅 위에 사는 네 발 달린 짐승들을 위해,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명들을 위해 울린다.

청동 미륵대불 오른쪽에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보살상이 서 있다. 흔히 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이라 부르는 이 보살상은 두툼한 판석과 커다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의 입상이다.
전체 높이 2m에 이르는 이 보살상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 장하는 희견 보살을 조각한 것이라고 한다. 희견 보살은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스스로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燒身) 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보살상은 하나의 돌로 대좌에서 머리 위의 판석까지를 조각하였고, 맨 위의 향로만이 다른 돌이다. 보살이 밟고 서 있는 대좌는 별다른 조각 없이 판석에 가깝다. 아마도 이 대좌의 반쯤은 땅속에 묻어 고정시켰던 것 같다.

이 쇠솥은 높이 120㎝, 지름 270㎝, 두께 10㎝의 거대한 규모로서 철확이라고도 부른다. 본래는 강원 옆 공양간 주위에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3,00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장국을 끓일 수 있다고 하는데 가람 곳곳에 있는 거대한 석조물통 및 항아리와 함께 번성했던 법주사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물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


속리산 입구의 황토길. 황토 알갱이로 만들어 산행으로 지친 다리의 피로를 풀어 가라는 길인가 보다.

속리산은 등산 또는 법주사와 비림박물관으로 되어 있는 코스동선이었는데 둘째날은 법주사와 비림박물관으로 동선을 정하고 셋째날 속리산등산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법주사의 이곳 저곳을 두루 둘러보고 나오니 이미 시간은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비림박물관 정문


찾는 이 없음인가! 주인도 객도 하나도 없는 박물관은 야외 전시장만 개방을 해 놓았을 뿐 실내는 지키는 사람이 없이 문이굳게 잠겨있었다.폐교을 이용해서중국 서안의 비림박물관을본떠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만드는 것은 마당 한 가득 서 있는 비석때문이리라.비문의 탁본이나 서예, 조각, 정치, 종교, 경제 등 역사자료들을 한자리에 모아 문화예술의 근원 및 발전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폐교된 학교의 모습처럼인적이 끊어진 박물관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동 시간은 30여분. 관람시간은 20~30분 정도였다. 만약 전체를 개방했다면 약 40분은 필요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정약수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2시가 가까웠고 초정스파텔에 차를 세운 우리는 온천욕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게 급선무다. 먼저 다녀간 회원의 안내로 도토리묵집으로 향했다.

초정약수스파텔

도토리묵 정식.

동동주 한잔에 도토리묵과도토리로 만든 전과 묵무침, 그리고 묵수제비까지 먹고나니 지친걸음에 배까지 불러오고...그래도 먹는 재미가 있어서 여행의 맛을 더해주는 것임을잊지 않는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생활해 오던 전통양식의 한옥

연못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

생가를 나와 미술관 가는 길.소유권문제의 시비로 쳐진 우측의 비닐끈으로 공방, 갤러리, 도예교실까지 출입을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관람객 수도 10분의 1로 줄었다는 직원들의 말에 하루 속히 문제점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미술관 앞에 놓여있는 돌은 사람의 옆얼굴을 닮은 듯 한 형상이다.

기념품 판매소에는 운보의 작품이 수 놓여진 여러가지의 작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미술관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 내부의 모습이다^^

운보의집은 하루 속히 소유권문제가 해결되어서 다시 관광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운보의 집을관람하고 나오니 해는 이미 산 중턱에 걸려있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나머지 일행들과 작별을 하고 우리들은 내일의 일정을 위해 보은으로 발길을 돌렸다.


세째날 속리산 산행은전날의 피로로 10를 넘어서 등반을 시작하였다.옛날 생각으로는 세시간이면 충분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장대까지 다녀온 왕복시간은 5시간 30분.이번 코스처럼 오후 일정이 있으면 짧은코스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볼 것 많던 이번 여행은 코스동선의 빽빽한 일정이 오히려 더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코스의 이동이 너무 많아 초행길의 여행객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여행이 되었다. 또한 음성큰바위얼굴조각공원이나 상수허브랜드, 청남대, 속리산법주사 그리고 속리산은 관람시간이 너무 짧게 잡혀있었으며비림박물관과 운보의집은관리적인 측면에서의 해결이 있은 후에 여행코스로 다시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1박2일코스만 함께 참여했던 일반회원들이 너무 좋았지만 무척 피곤하다는 평을 들으며 마친 이번 답사는 알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 쉴거리그리고 먹거리가 두루잘 선정된반면에2박 3일에 걸쳐서 여행하기에 딱 좋은 코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출처 -http://blog.daum.net/wbchoi604/622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