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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劉 門中

1911년(신해) 간행 죽간선생일집 서문 등 관련 선비

문양공 죽간선생일고 서문과 전(傳)을 지어

세상에 알린 조선시대의 선비들에 대하여 알아본다.

 

 

 

 

 

 

 

 

 

 

이만규(李晩煃) (1845~1920, 헌종11~)

진성인(眞城人), 초명은 만효(晩孝), 자(字) 순칙(順則), 호(號) 유천(柳川), 거(居) 예안(禮安) 하계(下溪)

생부(生父) 대사성(大司成) 휘준(彙濬)의 아들, 휘택(彙澤)에게 입양(入養), 예안(禮安) 출신이며 만도(晩燾)의 동생이다. 1879년(고종16) 생원시, 188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직장(直長)·전적(典籍)·지평(持平)을 지냈다.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1894년 부교리(副校理) 겸 동학교수(東學敎授)가 되었으나 이듬해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민비(閔妃)가 살해되자 사직했다. 1896년(건양 1) 예안 군수(禮安郡守)가 되었으나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사직하고 향리에 은퇴했다.

 

1910년(융희 4) 한일합방이 되자 입산하여 단식하고, 이듬해 우로금(優老金)이라 하여 주는 은사금을 거절했다. 1919년 고종의 장례(葬禮) 인산에 참석하고 김창숙(金昌淑), 곽종석(郭鍾錫) 등과 협의하여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儒林團) 대표로 독립청원서를 발송한 뒤 검거되어 성산(星山)감옥에서 옥사하였다.

1911년(신해) 강릉유씨도시조인 유전선생의 문집인 죽간선생일집에 이택종(李宅鍾)과 함께 서문을 지어 전해진다.

 

이택종(李宅鍾) (헌종12:1846~1916)

예안인(禮安人). 자(字)는 성홍(聖洪) 호(號)는 학포(鶴圃)로 진(珍)의 후(后)이다. 문학(文學)이 숙취(夙就)하여 사우(士友)들의 칭찬(稱讚)을 받았다. 유고(遺稿)가 있으며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편에 나온다.

1911년(신해) 강릉유씨도시조인 유전선생의 문집인 죽간선생일집에 이만규(李晩煃)와 함께 서문을 지어 전해진다.

 

김진기(金鎭麒)

본관은 의성(義城)/문소(聞韶) 호는 우하(愚下)1911년(신해) 강릉유씨도시조인 유전선생의 문집인 죽간선생일집에 죽간선생전(竹諫先生傳)을 지어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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