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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劉 門中

잃어버린 유고를 찾다 ◆잃어버린 유고를 찾은 사실-세원(世源:19세 경력공) 시조님의 유고가 세상에 나타난 것은 기이하게도 후손 인원(仁源:19세 군수공)이 잃어버렸던 시조님의 지석과 묘소를 찾은 다음해인 계묘(癸卯1903)년에 우연하게도 경주 기계촌에 사는 사람으로부터 시조님의 문집을 보관하고 있다는 뜻밖의 제보를 접하니 이곳은 옛적에 선조께서 처음 와서 거주하시던 곳으로 창주용포(蒼州龍浦)와 팔학산(八學山)이 있는 곳이다. 한 걸음으로 경주 기계촌(杞溪村)에 사는 유씨(兪氏)의 집으로 달려가 다 쓸어져 가는 폐고에서 우연히 죽간선생 일집(逸集:문집)을 얻었으니, 아! 이것이 우리 선조께서 남기신 아득한 옛 기록이다. 다행이도 한 권 묵은 책자가 천년 뒤 세상에 흘러 떨어져서 좀 먹고 찢어져서 착오도 없을 수 없으나 겨우 .. 더보기
시조 문양공 사적을 찾다 시조 문양공 사적을 찾다. ◆의물 및 사패지-고려실기(麗代實記) 고려충순왕 때에 거타군 북명천면(일명 명산면明山面) 덕곡산하계량동(일명 화지동花枝洞)에 상서공 시 문양 호 죽간 유선생의 능묘가 있으니, 해좌(亥坐)이다. 이곳에 갖춰진 석물은 신도비, 상석이좌, 등명석이좌, 동자석, 양마석, 장군석이 있으며 지석은 상석 밑에 묻었다. 사패지(賜牌地-인재가 죽었을 때 나라에서 주는 땅과 토지소유권문서)는 사방으로 오리(2㎞)까지 이며, 그 안에는 위토전이 오백두락(10만평)이고 밤나무가 200주이며 대추나무가 200주가 들어있고 개펄 밭이 좌우로 둘러있다. 재실 이름은 수송대(愁送臺)니 正寢(정침)이 5칸(五間)이요, 동행랑(東行廊)과 서행랑(西行廊)이 각각 3칸이며 하마비(말에서 내리라는 표석)가 대문밖에.. 더보기
유세원(劉世源) 선조 죽간일집을 간행한 유세원(劉世源) 선조 世源 세원 동도시조 文襄公(문양공) 휘 荃(전)의 27세 본관시조 菊齋公(국재공) 휘 承備(승비)의 19세 경력공파(經歷公派) 휘 智周(지주) 의 14세 시 호 출 생 년 월 일 1850년 경술(庚戌) 09월 27일 사 망 년 월 일 1924년 갑자(甲子)년 12월 19일 나 이 세 책페이지 030307 관 직 파 경력공파(經歷公派) 후 用良系 행 적 자(字)는 景欽(경흠)이고 호(號)는 霽岡(제강)이다. 1850년 경술(庚戌) 09월 27일에 태어났다. 공은 품기가 단정하고 총명이 정수하여 경사에 박통하므로 세간에서 학식이 높은 선비라 칭하였다. 당시 야성군(野城郡)안에서 팔재사(八才士)에 뽑혔으며 그 이름이 예림록(藝林錄) 및 야성읍지(野城邑誌)에 실렸었고 학문.. 더보기
대치 유홍기(劉鴻基)선생 구한말 개화기의 선각자 대치 유홍기(劉鴻基)선생 ↑대치 유홍기 선생 이 분은 장성에서 태어나 장성이 본향이면서도 정작 장성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서, 개화파의 3대 스승의 한 분이다. 실학 북학파(이용후생파)의 거두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역관 출신 오경석, 의관 출신 유홍기(유대치)는 개혁파 3대 스승이라 한다. [조부(祖父) 유명제는 북이면 송산 태생, 대치의 묘소도 송산에 있어] 대치(大致)유홍기선생은 유대치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구한말(舊韓末) 개화기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개화당(開化黨)이라 일컫는 사람들의 스승이자 실질적인 막후 실력자로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개화당 세력이 주도한 갑신정변(甲申政變,1884.12.4)이 3일 천하로 끝나고, .. 더보기